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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드소마>리뷰 - 난해한 !!
    카테고리 없음 2020. 1. 24. 23:41

    스포일러 하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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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공포영화 중에서 가장 화제가 된 <미드소마>를 봤어요. 이 영화를 만든 아이스타 감독이 <유전>으로 많은 유행을 얻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나는 <유전>을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어떤 작품이니 후속작인 <미드소마>까지 큰 관심을 끌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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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드소마>는 홍보 방식부터 독특했습니다.기존의 어두운 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공포영화가 아니라 밝은 아침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공포영화라고 선전하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처럼 기존 공포영화의 공식과 같은 방식을 파괴한 영화로 홍보하는 방식은 컨저링 이후 처음이라 더 관심 있었던 영화였어요. ​ ​ ​ ​ ​ ​ 게다가 국내의 포스터에는 '90년에 한번 9일의 축제 노은 선택됐다.'라는 문구를 사용했어요. 가끔 열리는 축제 사이에 펼쳐지는 잔혹시극이라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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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일인지 <써티데이즈> 오브 더 나이트>의 소견도 잘하면서 밝은 점에서는 하나 자신은 잔혹사극이라는 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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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공포영화로 유명한 <루인즈>를 떠올리기도 하는 영화였어요. 이런 소견을 하면서 <미드소마>를 보았습니다. 어차피 사람이 소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소재는 모두 넘치고 본인의 온정 속에서 영화가 대동소이한 소견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근데 이 영화 난이도가 꽤 높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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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뜻 깊은 그림이 많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림을 이해하기 전에 영화 줄거리부터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요. 주인공의 초반 불행과 스웨덴에서 겪는 하지재의 비극이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부터가 알기 쉽습니다. 게다가 영화 자체가 대사가 많지 않고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들어오는 정보도 많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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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고어성이 매우 강해서 다시 보기를 꺼려요. 고어성이 정말 강해서 제가 공포 영화를 보러 왔는지, 고어 영화를 보러 왔는지 헷갈릴 정도에요. 고어의 정도가 너무 강해서 보는 내내 눈살을 찌푸리고 화면에서 시선을 물들이게 됩니다. 보면서 생각하기로는 감독님이 머리를 많이 쓰신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영화 자체가 너무 불친절하고 잔인한 장면들로 가득해서 의문투성이인 영화라고 보기에는 힘들었지만 마지막에 큰 반전을 주었던 <메멘토>가 그리워지는 영화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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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멘토는 보면서 무슨 스토리인가 싶어 골치 아팠던 것은 미드소마와 일축대동소이였지만, 마지막 반전을 통해 그동안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 이상의 충격을 주고 그동안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그에 비해<미드소마>는 마지막에 내가 이해한 것이 옳다고 생각되며, 이<하지제>를 이 정도로 잔인하게 포용할 필요가 있다고 자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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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유튜버들과 블로거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칭찬 일색이지만, 저에게는 매우 혼란스러운 영화입니다. 공포영화라는 큰 틀 안에 고어영화가 있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공포를 다루는 방법은 서우 같은 고어영화의 방식을 다수 차용한 느낌이 강하다. 어디선가 위험이 닥치고 죽는 사람은 잔인하게 죽습니다. 이것이 이 영화의 공포방식입니다. 어디에서 두려움이 올지 모르게 연출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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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제 중간 동료가 사라지는데 주인공을 빼고는 아무도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장 기막힌 것은 사람이 눈앞에서 죽고 그 후 사람이 없어진 것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또 이 영화는 사람이 사라질 때 하루에 두명씩 모습을 지웁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스웨덴에서도 매우 깊은 산골 동네이 나쁘지 않을 수밖에 없고, 고런 곳에서 사람이 단 한명이 사라져도 그 사람을 찾으려고 동네울면서도 모자랄 판에 동네 사람들의 이내용만 믿고 찾는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또 동네 사람들은 노인이 자살하는 풍습을 죠쯔아도우루의 전통과 이내 손쉽고 여름에는 1조 같은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마인드를 가진 사람에도 불구하고,입니다. ​ 또 주인공 1행의 동료가 없어졌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두 사람이 사라진 후에 두 사람이 추가로 사라진 정세이지만, 주인공은 이를 수상히 여기는 시늉만 하고 그 이상의 행동을 보일 수 없습니다. 뭐 주인공은 영화 초반부터 큰 마 sound의 상처를 가지고 시작했기 때문에 정상이 아니더라도 주인공의 남성 칭구까지 실종된 칭구를 찾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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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그들은 마을 사람들이 뭔가 1조 같은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보는 입장에서 더 답답했습니다. "과인이 스스로'Sound'를 선택한다는 데 변함 없이 영화는 불친절한 정도가 심하고, 이 2가지가 섞이고, 후반부의 이야기는 하염없이 흘러가고 보게 되는 상태를 만들겠습니다. 영화를 깊이 보는 것이 습관화된 사람들에게 다른 것이 보 1고생이지만, 1단 영화는 재미인 집중하도록 하는 재미가 우선이라며 소견하는 나에게는 영화 중반부에서?하는 소견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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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의 설정상 모순에 대한 설명도 없는 것이 보고 자신감에 찬 인상을 주는 데 한몫한다. 영화 중간에 하지제를 지내는 지역 공동체 유지 방식에 대한 정보가 뿌려집니다. 이들은 장로에 의해 교미가 허용되기 때문에 근친상간은 각별한 경우가 아니면 성립되지 않으며 필요할 경우 외부인을 불러들이기도 한다고. 여기서 근친상간은 장난인 양, 진심처럼 따로 질문이 오가면서 이 특이한 장소에서도 피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특이하게도 땅의 성경책 신내림(?)을 따라가는 소녀는 근친상간을 통해 태어난 유아임을 알려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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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다시 한번 머리가 아파집니다. 이 마을은 특이한 마을이긴 하다. '태양'을 숭배하고, 마을 곳곳에 태양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게다가 하지제는 결국 태양을 숭배하는 의식입니다. 1단 이 마을이 ' 하고'을 숭배하는 것은 아겟슴니다. 추가로 이 마을은 사람들의 1생을 마치'윤회'과 마찬가지로 소견을 한다. 죽으면 새로운 아이에서 태어나면 소견을 잡고 사람의 인생은 마치 계절과 같아서 그 주기를 18년으로 나쁘지 않고 누우 십 4계절의 마지막 겨울, 72살이 되면 스스로 죽 소음을 맞이합니다. 이것으로 그들이 자살을 왜 의식에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왜 근친 상간을 통해서 태어난 아이가 중요한 것 1인가요? 그들의 혈통을 유지하면서 신의 계시를 받기 위해서라고 말한 것 같은데 이것이 이 영화의 스토리와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의미심장한 느낌만을 줍니다. 제가 해석하지 못한 것 1의 확률이 크고 그 해안에서는 맥거핀 1도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주인공 1행은 진짜 결국 의식의 희생일 죽을 운명인데 굳이'성경'을 이용하고 유인한 해안의 죽 1필요가 잇옷나프지앙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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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마약과 함께 마을 특유의 환각제를 이용한 화면이 흔들리는 효과를 자주 사용한다. 마치 환각과 현실의 구분을 없애기 위해 사용했거나 또는 시간적으로 불안한 시각을 심어주기 위해 사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효과는 이 영화 특유의 도도함과 기괴함 때문에 제게는 거북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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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주인공'이 있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에게 어떤 하나가 있었는지다.영화를 보면서 초반부 가족의 비극과 하지재가 대체 무슨 관계가 있었고, 이 두 가지 요소를 한 영화에 넣었을까 소견해 봤습니다. 이 사고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의 사고였는데 마지막에 주인공이 웃는 것을 보고 소견을 했는데.주인공은 동생으로 인해 가족을 시간에 따른 필연적인 대나무 소리가 아닌 의도적인 대나무 소리로 보내게 됐습니다. 이 부분은 '하지제'를 진행하는 도시의 필연적인 주례 크소리울 거부하고 의도적으로 72세에 주례 크소리울 맞는 모습과 거의 유사합니다. 이런 점 때문인지 주인공은 자살하는 바위에 대한 환각을 볼 때 가족이 그 바위 근처에서 죽어 있는 환각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철 주인공 하나행을 이끌어온 펠레와 주인공의 연관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펠레와 주인공 대니의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펠레는 어릴 때 가족을 잃고, 대니는 최근 잃은 차이입니다. 이것에 대해 펠레는 대니에게 예상할 겁니다. 이곳은 가족을 잃은 나를 매우 고맙게 여기고 자신도 이곳을 가족처럼 여긴다고 한다. 대니도 이곳을 가족처럼 이곳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때가 자살하는 두 노인이 나온 앞으로 이를 넘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소견으로 부정적으로 봤으나 영화 후반부에 대니가 5월의 여왕이 된 뒤, 옆에 있던 사람이 "시반은 가족입니까. 자매님! 이라는 걸 보면 대니가 그들의 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정예기 결국에는 잔인하고 기괴한 하지제는 이 영화가 공포영화이기 때문에 한 가지 요소일 뿐, 중점적으로 봐야 할 것은 가족을 잃은 대니가 어떻게 이 마을의 꽃밭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대니는 이 영화 내내 웃는 모습이 없어요. 마지막 장면과 5월의 여왕이 되는 장면을 제외하면입니다. 이것이 의미심장하지만 대니는 초반부터 동생의 이상행동에 시달리다 가족의 대나무 소리에 비통했고, 자신을 꺼리는 동료들 때문에 불쾌하고 기괴한 동네 때문에 불안했고, 남성 칭구 불륜으로 절규하기까지 했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웃는 이유가 뭔지 하나 소견해 봤어요. 우선 5월이 여왕이 되는 춤을 출 때 웃은 이유는 그녀가 스웨덴어를 이해하면서 기꺼이 웃었지만 사실상 그녀의 소견을 누군가 소통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로 웃었다 곳 찾는다. 그녀는 가족, 칭구, 남성 칭구 전체에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서먹서먹한 대화만 나눌 뿐이었습니다. 펠레와는 대화하고 있지만, 그녀는 남성 칭구가 있어서 불쾌해 보였어요. 하지만 춤을 출 때는 같은 여자끼리 대화를 해서인지 불편함 없이 의사소통을 하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웃은 이유는 그녀의 모든 고통이 끝난 순간이라 웃은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족, 칭구를 잃는 불행과 남성 칭구의 불륜을 목격한 그에게 눈에 보이는 나머지 불행은 불륜을 저지른 남성 칭구이다. 마지막이 되면서 사실상 그녀는 마을의 하나가 되고, 불행인 남성칭구가 타죽으면서 그녀에게 행동에 제약이 되는 불행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남칭으로는 비극이지만 그녀에게는 앞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을의 공동체로 남을 수 있게 됐기에 웃지 않았나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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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가장 화제의 공포영화 <미드소마>에 대한 리뷰를 써봤는데 이야기의 깊이는 얼마나 아름답고 깊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 영화의 고어성 때문에 더는 파헤칠 수 없어요. 이 영화가 공포영화인지 아닌지 의문인데요. <토르> 같은 고어 영화도 공포영화의 범주에 들면 공포인데, 그렇지 않으면 이 영화는 공포라기보다는 그냥 색이 밝은 고어 영화라고 소견할 겁니다. 이 영화는 호불호가 갈린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영화는 너무 오래되고 기괴해서 나는 호불호가 갈린다. 어떤 영화인지 알고 싶어 한번 보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2번 3번 보기에는 부적합한 영화로 소견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가끔 해석 내용이 실리면 제가 소견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봐도 이 영화는 다시 볼 일이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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